Date: 2010-12-08
Source: 한국경제

지난해 4월8일 일본 NHK 방송은 "특허제도가 위험하다"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 무효판결이 속출하면서 비등했던 일본 내 비판 여론을 다룬 내용이었다. 2007년 60%대에 달했던 일본의 특허 무효율은 최근 50%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미국은 그 반대의 경우다. 전통적으로 특허권을 강하게 보호해온 미국은 권리자 중심의 특허 사법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특허전담고등법원(CAFC) 설립 이후 1심 법원 판사들이 무리하게 특허를 무효로 판단할 경우 CAFC가 파기할 확률이 높아지자 특허 무효율은 뚝 떨어졌다. 지금은 20%대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최근 특허괴물이 횡행하면서 미 대법원이 특허권자의 과도한 권리행사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특허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특허권의 지나친 보호는 발명의 이용을 저하시키고 때로는 공익에 반할 우려도 있지만,다른 한편으로 특허권의 미흡한 보호는 발명과 혁신의 의욕을 감퇴시켜 지식재산 창출동기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 특허권의 양면성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특허보호 수준이 권리 남용을 우려해야 할 정도인가,아니면 특허를 받아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인가.

최근 서울중앙지검 형사 6부 주최로 열린 지식재산권 관련 세미나에서 정차호 성균관대 교수가 눈길을 끄는 통계 몇 가지를 제시했다. 우리나라 특허심판원의 특허 무효심판에서 무효율이 70%를 넘고,특허권자가 특허심판원에 상대방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경우 침해성립률은 25%대에 불과했다.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이길 확률도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특허권자의 승소율이 60%에 달하는 미국과는 아예 비교조차 안 되고,프랑스 55%,캐나다 38%에 비해서도 너무 낮다. 여기에 개인이나 중소기업들이 특허침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손해배상 판결은 청구액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있다. 고의적 침해에 대해서는 최고 3배 배상제도를 운영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자칫 특허에 대한 무임승차나 무시 분위기가 조장돼 국내에서는 특허를 받아도 아무 소용없다는 이른바 '특허무용론'의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허문서는 법률문서 중 이해하고 해석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할 만큼 특허권 소송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만약 높은 특허 무효율과 낮은 승소율이 특허권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해주기보다 침해에 더 우호적인 경향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한다면 특허무용론은 근거 있는 지적일 수 있다. 그 경우에는 우리가 지식기반경제를 말하기 전에 특허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률적,제도적 개선책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히 나올 만도 하다.

다른 인과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허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품질이 낮은 특허의 대량 양산이 특허의 무효율을 높이고 침해소송에서 권리자의 승소율을 떨어뜨렸을 가능성이다. 만약 이런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면 법적 환경만 탓할 게 아니라 강하고,고품질의 특허 창출이 궁극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아니면 또 다른 요인들 때문인지 지금은 온갖 추론만 난무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는 게 급선무다. 특허청은 즉각 상황 파악에 나서야 한다. 이는 국가 특허정책의 향배를 좌우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